2025/11 2

조기 수확

11월의 까르보나라1. 화요일의 의식(Ritual)화요일이 되면 나는 스파게티 까르보나라를 만든다.지구의 자전축이 갑자기 23.5도에서 25도로 기울어지거나, 누군가 내 현관문 앞에 죽은 페르시안 고양이를 두고 가지 않는 이상 이 규칙은 변하지 않는다. 화요일이라는 요일이 파스타를 강력하게 요구해서는 아니다. 단지 그것이 내가 정한 규칙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소한 규칙들로 닻을 내리지 않으면,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빗물에 젖은 수채화처럼 흐릿하게 번져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다.나는 코너에 있는 편의점으로 걸어간다. 11월의 바람은 날카로운 면도날처럼 뺨을 스친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은 언제나처럼 내 얼굴 따위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는 마치 심해어처럼 창백한 얼굴로 오직 바코드 스캐너에서 나..

일상다반사 2025.11.27

차크라

최종이론1.그는 눈을 거의 뜨지 않았다. 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열두 살 때 미적분학을, 열다섯 살 때 양자역학을, 스무 살 때 뇌과학의 마지막 퍼즐을 풀었다. 그리고 서른두 살이 되던 해, 그는 세상의 모든 규칙을 하나의 수식 안에 담아냈다. 입자와 파동, 시간과 공간, 생명과 죽음. 우주의 모든 것이 그의 이론 안에서 정확히 들어맞았다."이제 당신은 신이군요." 동료가 말했다.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신이라는 단어가 적절한지 몰랐다. 다만 그는 내일 아침 해가 뜰 정확한 시각을, 다음 주에 비가 올 확률을, 십 년 후 어느 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날 것인지를 알았다. 모든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모든 인과의 연쇄를 계산할 수 있었다.그의 이론은 한 가지 더 예측했다. 우주는 영원히 팽창하지 않는다는 ..

일상다반사 2025.11.14